방시혁 소개
방시혁은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이자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Big Hit Entertainment의 창업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72년 8월 9일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과 창의력을 통해 현재는 K-pop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방시혁은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탁월한 기획 능력을 발휘하여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성공적인 음악 활동을 이끌어내며, 국내외에서 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창안한 Big Hit Entertainment는 K-pop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아티스트 기업 중 하나로 성장하였으며, 전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방시혁은 차세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대표 주자로서, 한류와 K-pop의 성공적인 확장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방시혁의 경력과 업적
방시혁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하며 음악 프로듀서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기존의 음악 기획과 프로모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키워나갔습니다.
특히, 방탄소년단(BTS)을 발굴하고 육성하여 전 세계적인 인기와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방시혁은 국내외 음악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을 통해 방시혁은 한국 음악산업의 선두 주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으며, K-pop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또한, 방시혁은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음악 활동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탁월한 기획 능력과 창의성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성공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 프로젝트와 아티스트들의 성공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방시혁 명언 및 어록
- 나는 원대한 꿈이나, 야심, 구체적인 목표 따윈 없었다.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진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며 살았다.
- 저는 태생적으로 안일함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종 핑계로 최고가 아닌 최선을 선택하고, 가장 좋은 상태가 아닌 적당한 상태에 그치고 마는 관습과 상황을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저의 성격이 저의 일이나 제 삶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 나는 어떠한 추상적인 꿈 대신 분노가 있었다. 그것이 나를 움직여주었다.
- 내가 정의한 행복, 상식을 방해하는 것에 맞서고, 이를 개선해나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소명이 되어 자신을 이끌어 줄 힘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저는 연습생 때부터 멤버들에게 자발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탄 아빠라 불리는 게 불편합니다 아티스트라는 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창작자는 노동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감에 의존하거나 믿는 편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매일 작업실에 나와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꾸준히 작업하는 것 외 좋은 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결은 없습니다.
- 작사, 작곡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음악에 대한 열정입니다 진심으로 다른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말로 음악을 안 하면 못 살 것 같은 미친 열정
- 저는 녹슨 수레바퀴를 돌릴 때면 잘 돌아가기 직전에 가장 힘이 많이 든다라는 말에 공감을 하는 자라 힘들면 힘들수록 더 열심히 덤벼드는 편입니다.
- 나는 음악은 엉덩이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실에 오래 붙여 앉아서 다양한 음악을 많이 오랫동안 들어야지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방시혁의 사회적 영향
방시혁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한국의 음악산업을 세계 무대로 이끌어내면서, 한국 문화와 음악의 글로벌 홍보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주축 아티스트인 방탄소년단(BTS)은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인기를 얻으며 한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또한, 방시혁은 K-pop의 성공을 통해 한국 음악산업의 국제적인 시각을 확대시키고, 한류 열풍을 촉진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방시혁은 그의 리더십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음악과 문화가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한국문화의 글로벌화를 이끄는 주역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력은 방시혁을 한국 음악산업의 중요한 이정표로 만들었으며, 그의 노력과 업적은 한국 음악산업의 미래 발전에도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방시혁은 한국 음악산업을 세계무대로 이끄는데 큰 기여를 한 음악 프로듀서이자 기업가입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창의력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아티스트들의 글로벌 인기를 이끌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방시혁의 사회적 영향력은 한국 음악과 문화를 전 세계로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그의 업적과 리더십은 한국 음악산업의 성공적인 미래를 모색하는 데에도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앞으로도 방시혁은 한국 음악산업과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음악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를 기대합니다.
방시혁 서울대 축사 전문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여러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입니다.
오늘은 날씨조차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듯 화창한 것 같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교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다는 건 무한한 영광이기에 총장님의 축사제안을 덜컥 수락해 버렸지만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또 무엇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첫걸음을 내딛는 여러분께 해드릴 유의한 이야기가 제게 있는지 우려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졸업 축사란 것은 결국 연사가 졸업생에게, 혹은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꼰대스러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은 최대한 솔직한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제 자랑도 좀 하게 될 것 같고, 제 삶의 여정 중 여러분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198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공부를 조금 한다고 법대를 가는 게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1지망도 법대였습니다. 법학에 대한 열망도 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목표와 성공의 요건에, 별 자의식 없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다가오고, 점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를 쓰느냐, 법대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서울대를 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습니다.
저는 후가를 선택했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듯 법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수는 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법대 다음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과를 가려니까,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과들을 뒤지다가 미학과를 발견했습니다.
법대를 기대하셨던 어른들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떨어지면 재수는 없다고 반 협박조로 무사히 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미학과가 저와 너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미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수업들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원래 예술도 좋아했었고 탁상공론을 좋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미학과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고 음악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게 됐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쩌다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을까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많은 분들께서 서울대생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까지는 대단한 에피소드나 굉장한 결단이 있었을 거라고 추축 하시는데,
사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정말 허무하죠?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부터 직업 프로듀서의 길에 들어서 박진영 씨와 함께 JYP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그 후 독립해서 지금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우스운 게 독립한 우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회사를 차리겠다고 생각했는지 선택한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두부터 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제 인생에 있었던 중요한 경정들, 훗날 보연 의미 심장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사실 그림을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저와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면 이런 말이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초청받으면서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외신에서는 감히 유튜브 시태의 비틀즈 라는 과찬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주요 지역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영광스럽게도 빌보드가 뽑은 25인의 혁신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마 뉴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이런 성공 뒤에는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거나,
방시혁은 엄청난 야심가여서 큰 미래를 그려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해 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심은 둘째치고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매번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하고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잠깐 바꿔 볼게요.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면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 하겠습니다.
제 일은 물론, 직접적으로 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최선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고 되고 그럼에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분노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거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정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 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행하게 한 것은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준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릭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pop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르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 없는 익명의 비난에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있습니다.
우리 피, 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분노하게 되고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박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저는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 들고 있지만,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행복한 상황고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두 번째 행복의 정의에 입각해서, 저는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산업적으로는,
음악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내는 게 저의 행복입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제가 앞에서, 저는 구체적이거나, 커다란 꿈이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기업이 될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심지어는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지에 대해서도 그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저의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커 다한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듯 보일 겁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저와 제 주변사람들, 제가 봉사해야 하는 고객들의 행복까지 빚어낸 매우 이상적인 상황으로 보일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 이런 시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상황과 싸우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제가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 위로와 행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 꿈이 아니라 제 불만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 겁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매진할 것이며,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혹은 K-pop 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겨지는 벽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제 자신을 갈고닦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큰 꿈이 없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 한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 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라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과 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하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두서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한신 여러분, 다시 한번 격하게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내시고 10년 후, 20년 후,
내가 제법 잘 살아왔구나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만의 행복을 정의하고 잘 찾아서, 여러분 가운 멋진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철의 연금술사 내용요약,대사,이노우에 타케히코 작품들 (1) | 2023.07.11 |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c)'생애,업적,명언,어록 (1) | 2023.07.11 |
주토피아 내용요약,대사,디즈니 작품들 (0) | 2023.07.10 |
곰돌이 푸 내용요약,대사모음 (0) | 2023.07.10 |
보노보노 내용요약,대사,이가라시 미키오 작품 (0) | 2023.07.10 |